2003년 7월 19일 개장으로 빼어난 주변관광자원과 더불어 깨끗하고 편안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가를 바탕으로 부대 시설로는 스트로튬, 황, 칼슘, 리튬이 주 성분으로 한 온천수질은 현대인의 고질병인 두통을 통한 뇌신경계통의 스트레스, 아토피 즈피부, 수술후 피로회복, 관절염, 자궁주의염, 고혈압, 건성피부에 최적격이다.
다음으로는 6천여 평의 잔디광장과 22,800평의 수목원과 4천여평의 야외예식장 및 1,000여평의 광장과 3,000여평의 주추장을 보유하고 있어 가족동반 및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방문하면 좋다.

문의전화안내 : 061)380-5000

호남의 3대 산성 가운데 하나인 담양 금성산성(사적 제 353호)은 사방이 30여m가 넘는 절벽으로 둘러싸인 석성(石城)이다.
삼국시대에 구축하여 조선태종 9년인 1409년에 개축한 것으로 전해지며,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성문터가 자리잡고 있다.
통로 이외에는 절벽 등으로 막혀 통행이 불가능하며, 주변에 높은 산이 둘러 싸여 성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그야말로 완벽한 '요새'의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는 성이라 할 수 있다.
산성이 위치한 금성산(603m)은 전북 순창군의 경계를 이루며, 담양읍에서 동북쪽으로 약 6km에 위치하고 있다.
사방이 암석으로 둘러싸이고 중심부는 분지로 되어 있는 주봉인 철마봉을 비롯,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잇는 가파른 경사가 인상적이다.
금성산성은 둘레기 6,855m이고 성안에는 곡식 1만 6천 섬이 들어가는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남원성과 함께 의병의 거점이 되었고, 동학농민전쟁 때는 치열한 싸움터가 돼 성안의 많은 시설이 불에 탔다.
그러나 지금도 동서남북의 성문과 성벽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일단 산성 안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곳곳에 우물이나 절구통 같은 유물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산성의 남북 밖은 전북 순창군의 강천사 등의 관광 명소와 바로 연결된다.
또한 산성의 정상에 오르면 앞에는 무등산과 추월산이 솟아있고, 발 아래로는 담양호가 펼쳐져 있어, 관광코스는 물론이거니와 멋진 광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 평가받고 있다.
담양군은 성곽보수를 비롯, 동헌 등의 관아시설, 대장청 등의 군사시설, 민속촌 등을 조성하여, 금성산성을 호국안보 학습장으로 복원할 계획을 갖고 있다. 앞으로 금성산성은 담양호 국민관광지와 연계된 관광명소가 될것으로 기대된다.
전남 담양군은 대나무가 많기로 유명한 고장으로 담양하면 죽향(竹鄕), 죽향하면 담양으로 통하는 곳입니다. 기후와 토양이 대나무가 자라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담양은 그러한 이유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죽림을 보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나무를 이용한 공예적 작업은 옛날부터 있어왔으나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플라스틱 제품에 점차 밀려 한때 주춤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죽향의 고장 담양에 1981년 9월 죽물박물관의 개관을 계기로 사양산업으로 몰락할 뻔 했던 죽세공품은 장식품이나 액세서리류로 변모되면서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담양 땅에 들어선 세계 유일의 죽물박물관은 담양의 대나무로 만든 각종 제품들을 전시하고 있어 대공예품의 우수성과 정교성, 예술성 등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로 전시실은 모두 3개로 나누어져 있으며 전시, 판매, 휴식공간도 함께 갖추고 있습니다.
1층의 제 1전시실은 죽물전시실.. 대의 생태와 특성, 대의 종류, 담양 죽제품의 우수성 등 대나무에 관한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2층은 좌우로 죽물생활실과 기획전시실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죽물생활실에는 말 그대로 대나무로 만든 각종 생활용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기획전시실에는 죽제품 경진대회 역대 수상자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죽물박물관을 중앙에 두고 좌우로는 죽제품 판매장과 인간문화 전수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죽종장에는 담양에서 자생하는 대나무가 60여 종이나 자라고 있으며 죽물장이 서는 2일과 7일에 맞춰 박물관 관람을 하면 더욱 좋습니다

+ 문의전화안내 : 061)-381-4111 / 담양군 담양읍 천변리 401-1번지

5.18 기념공원은 5.18의 명예회복과 값진 교훈을 올바르게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약 6만여 평의 부지에 기념관, 오월루 등 5.18 관련 시설물과 방문자 휴식공간, 한국 야생화, 산책로, 잔디밭 등 공원 기반 시설을 조성하여 시민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5.18 기념공원과 4km거리의 상무지구에 위치하고 있는 자유공원은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정권 찬탈을 기도하던 일부 정치군인들의 강경 진압에 맞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신 분들이 구금되어 군사재판을 받았떤 상무대 법정과 영창을 원형으로 복원,재현한 곳이다.
5.18 기념공원은 구 상무대 자리의 6만 여평에 조성하여 그 규모가 방대하며, 광주 도심에 위치하고 있으나 비교적 숲이 울창하고 잘 보존되어 있어 여러 가지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또, 공원의 산책로 주변에 한국 야생화를 식재하여 계절에 따른 야생화를 관찰할 수 있으며, 도로 절개지 주변에는 솔이끼가 공원 바로 맞은편 상무고등학교 화단 주위에는 우산이끼가 많이 번식하고 있다.
인공 연못을 만들어 연못의 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장소이다.
이와함께 KBS 광주 방송국과 한국은행 광주지점이 인근에 위치하여 자연관찰 학습과 아울러 다양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의 운영이 가능하다.
또한, 이곳은 공원이므로 시간과 계절에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으나, 한국의 야생화나 활엽수 등이 많이 있어 겨울보다는 봄과 여름, 가을에 이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너럭바위 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헤치고 정자를 앉혔으니 구름 탄 청학(면양정)이 천리를 가려고 두 날개를 벌리고 있는 듯 이 구절은 송순이 면앙정의 전체적인 모습을 묘사한 부분으로 '면앙정가'의 일부분이다. 송순이 묘사한 대로 면앙정은 대숲이 우거져 있는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 돌계단이 있는 평지에 자리잡고 있다.
면앙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규모이며 사방에 마루가 깔려 있다. 주변의 자연과 깊이 친화된 인상을 준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내어 나한칸 달한칸 청풍한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데 없으니 둘러보고 보리라
송순의 자연애와 안빈낙도하는 삶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면앙정은 사람, 달, 청풍이 한데 어울릴 수 있는 자연합일의 공간이다.
면앙정 앞에 펼쳐진 '들일데 없는' 강산은 인간과 자연과의 연결 통로가 되며 사시사철 변화, 관조의 멋을 제공한다.
정자 앞에는 가사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면앙정가'를 새긴 비석이 있다. 면앙정가는 호남 가사문학의 원류가 되며 정철의 '성산별곡'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바 있다. 때문에 면앙정 건물자체는 소박하지만 가사문학에 있어 역사적인 의의가 크기에 1972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정자 앞뒤로 선 큰 참나무 두 그루는 송순이 직접 심은 것이라고 전해지며, 제월봉 정상부근에는 송순의 무덤이 있다.
소새원(瀟灑園)은 담양군 남면 지곡리, 까치봉 자락에 자리한 원림(苑林)이다.
원림이란 한국적인 특색, 즉 자연 경관을 그대로 살려 담아낸 정원이라 할 수 있다. 소쇄원은 이런 우리나라 원림을 대표하는 곳이다.
소쇄원은 도로변에서 약 15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 짧은 진입로도 울창한 대나무 숲길이어서 죽향 가득한 운치 있는 길이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왼쪽으로 작은 계곡과 소쇄원이 나타난다.
원래는 이 일대가 모두 소쇄원이었다고 한다. 지금 부분적으로 담이 있는데, 이 담의 안쪽을 내원, 바깥쪽을 외원이라 구분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담 안쪽의 내원만 남아 있다.
이 내원은 작고 아기자기한 계곡을 끼고 있는데, 이 계곡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대로 살려 소쇄원을 꾸몄다. 계곡 너머로 광풍각(光風閣)이라는 누각이 있고, 그 뒤로 제월당(霽月堂)이 있다 예전에는 건물도 10여 채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 두 채의 누각과 정자 하나만 남았다.
이렇듯 예전의 모습을 잃고 크게 축소되어 있지만, 소쇄원의 기품은 아직도 살아 있다. 주변의 대숲과 잘 어우러져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조선 선비의 기개가 느껴지는 곳이다.
이 소쇄원은 조선 중기 양산보에 의해 조성되었다. 양산보는 1500년대 인물로 조정의 당파싸움에 환멸을 느끼고 이곳에 내려와 은둔생활을 하며 소쇄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주변에는 명옥헌, 환벽당, 식영정 등의 원림과 정자들이 모여 있다.
식영정(息影亭)은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가사문학관 옆 언덕 위에 자리한 정자이다. 이 부근에 소쇄원과 환벽당이 같이 있어 호남의 정자문화권을 이루고 있다.
식영정은 1560년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인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라 한다. 이 식영정을 지어 장인에게 주고, 자신은 식영정 바로 아래 서하당이란 정자를 따로 지었다. 서하당 옆으로는 부용당이란 멋진 정자가 있다.
부용당과 서하당을 보고 언덕을 오르면 식영정이 나온다. 예전에는 바로 아래의 창계천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을 법도 한데, 지금은 나무가 많이 자라 창계천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건물 자체도 이 부근의 다른 정자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건물의 서까래 등 목재를 자연목 그대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서까래와 기둥으로 휘어진 목재를 그대로 썻는데, 선조들의 자연친화적인 생활을 느낄 수 있다.
식영정을 지은 김성원은 식영정 건너편에 있는 환벽당의 주인인 김윤제의 제자라 한다.
환벽당에서 송강 정철과 함께 공부를 했던 사람이다. 송강 정철도 멀지 않은 곳에 송강정을 지었던 것을 보면 두 사람은 스승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환벽당은 창계천 가의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 건물로 사촌 김윤제가 지었다.
붉은 정문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남향으로 자리잡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골기와 팔작지붕인 집이 보이는데 바로 환벽당이다.
서쪽 2칸은 방이며 가운데 방을 제외한 양옆은 모두 마루로 꾸며져 있고, 우암 송시열이 쓴 글씨와 석천 임억령의 시가 걸려 있다.
이 정자는 뒷편에 있는 동산을 정원으로 여기는 후원 형태로, 일반적인 정자와는 약간 다른 면을 보여준다. 지금도 계단 아래연못으로 추정되는 흔적과 함께 2,500평 정도의 넓은 정원이 있다. 그리고 정원 주위에 흙으로 쌓은 담이 나무들과 어우러져 멋을 더한다.
김윤제는 을사사화 때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와 이곳에서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는데, 대표적인 제자로 송강 정철, 서하당 김성원이 있다.
환벽당은 송강 정철이 소년 시절부터 27살에 등과할 때까지 공부하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후손들 사이에 '송강 정철이 10여 살 때쯤 현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에 살고 있었다.
더운 여름날, 어머니와 함께 순천의 형을 찾아가던 길에 환벽당 밑에 흐르는 창계천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마침 김윤제는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한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깜짝 놀라 급히 내려가 보니 어린 소년이 목욕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소년을 데려다 제자를 삼았는데 바로 송강 정철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송강 정철은 김윤제의 외손녀와 결혼하게 되었으며, 김윤제는 송강이 벼슬길에 나아갈 때 까지 뒷바라지를 하였다고한다.
송강이 17살부터 벼슬에 나아가 정치인으로서, 시인으로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사촌 김윤제의 힘이 컸다고 할 수 있다.
풍암정은 원효 계곡의 하류에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선조·인조 때 활동하였던 풍암 김덕보가 지은 정자이다.
정자에는 풍암정사 현판과 정홍명이 쓴 「풍암기」, 임억령, 고경명, 안방준, 정홍명, 풍암 등의 시를 새긴 판각이 걸려 있어 일찍부터 유명한 시인들이 이곳에 출입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은 앞·옆면 모두 2칸으로 1칸씩의 온돌방을 두었다. 팔작지붕으로 홑처마이며, 모두 둥근 기둥이나 가운데에만 팔각형의 기둥을 세웠다. 오른쪽에 거실 1칸을 두고 앞면과 왼쪽은 판자마루로 둘렀다.
풍암은 임진왜란 때에 큰 형 덕홍이 금산 싸움에서 순절하고, 중형 덕령이 의병장으로 크게 활약하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이를 슬퍼하여 묻혀 살았다.
그 후 세상을 잊고자 하는 뜻으로 무등산의 수려한 원효계곡을 찾아 터를 잡고 학문을 닦았다.
가사문학관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319번지 일원으로 광주호 주변의 경치 좋은 곳인 식영정과 환벽당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규모는 부지 5,017평, 건물 650평(한옥형)으로서 총 사업비 8,300백만원을 들여 건립했다.
시설은 본관이 541평(지하 1층 203평, 지상 2층 338평)인데, 지하 1층(203평)이 기계실로 되어있고, 지상 1층(208평)은 세미나실, 전시실, 장서각, 자료실, 문화사랑방 등으로 되어 있으며, 지상 2층(130평)은 제 1·2전시실로 되어 있으며, 부대시설(109평)은 기획전시실, 토산품 전시장 등으로 되어있다.
주요 전시물로는 가사문학 관련 재현도 및 유물 200여점, 담양권 가사 발췌 18편 그리고 가사관련 도서 1,500여권 등이다.
이 곳 가사문학관은 무등산 자락 담양군 남면의 가사문학권역의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어, 새로운 가사문학 유적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으며 이 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시 선비들의 생활과 가사문학의 참 맛을 맛보게 해준다. 전라남도의 북쪽에 위치한 담양군은 기름진 평야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수 많은 문화 유산을 보존·전승해 온 유서 깊은 고장이다.